오늘은 늦은 오후, 남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나갔습니다. 한 달에 두 편 보면 되는 영화가 뭐 그리 힘든지, 어째 계속 밀리고만 있어서 시간이 난 김에 보러 갔어요. 월요일날 숙지도 테스트인데 이게 뭔 여유스러움인지.ㅋㅋㅋ
영화를 보고 나오는 동안 계속 곱씹으면서 '아하-!' 하는 것도 여러번이었달까요.
여러가지로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그 끝맺음도 기억에 남네요.
유해국(박해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제의 마을에 오게 됩니다. 그리고 마을에 비밀이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마을에 남게 되지요. 아버지의 죽음에 비밀이 있다라고, 의심많고 신중한 성격으로 차근차근 비밀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다소의 스포일러 주의해주세요!!
해국의 아버지인 유목형이 사망하고 해국이 마을에 오자, 마을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어떻게 알고 왔을까?' 라고.
그러나 초반에서 나름 신묘한 이미지를 주고 있던 유목형이었기에 영화 등장인물들은 그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큰 반전을 야기하는 부분이었는데 말이죠. 초반부터 큰 거 터뜨리면 죄송하니까, 이 반전은 마지막에 다시 말하기로 하죠.
마을에 계속 있겠다는 해국을 마을 사람들은 부담스러워 하고 경계하며 언제나 돌아갈련지 노심초사합니다. 이끼같이 있는 듯 없는 듯 붙어 살라고 했지만, 잡초처럼 쑥쑥 자라 마을을 쑤시고 다니게 된 해국과 가장 처음 몸싸움으로 죽음을 맞이한 인물은 철물점 비슷한 것을 운영하는 전석만(김상호)입니다. 해국의 존재에 스스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려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 말 좀 그만하세요. 선생님이 죄,죄 운운할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그가 유목형 생존에 꽃 하우스에서 유목형에게 한 말입니다.
죄인이 아니라고 죄를 잊고 살다가 죄를 씻었냐는 말에 죄인이 된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는 거죠.
결국 그 압박감이 사라지고 나서 그 아들이라는 인물이 마을에 오며 사라졌던 압박감을 다시 느끼게 되며 정신적으로 혼란기에 빠진걸까 싶습니다.
결국 그는 몸싸움 끝에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고, 사람들의 해국에 대한 경계심과 부담감은 살의와 복수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장 천용덕(정재영)이 유목형(허준호)과 함께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성경의 어구.
다는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 같은 구절이 두 번 등장합니다.
두 번 모두 슈퍼주인 영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한 번은 영지가 어린 시절 성폭행 당하고 애까지 떼인 후, 유목형이 권해 읽게 된 페이지였습니다.
영지의 복수를 천용덕이 해 줬을때죠.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자고 일어난 해국의 머리 맡에 있던 영지가 두고 간 성격책입니다.
같은 문구가 있는 페이지에 이번에는 천용덕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구는 다름 아닌
'멍은 멍으로, 이는 이로... ' 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비슷한 어구였습니다.
천용덕은 그 문구를 처음 보고 매우 마음에 들어하죠.
영화 속에서 두 번 등장하는 이 문구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료를 총으로 쏘아 죽인 전석만은 돌에 맞고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지만,
물장사를 하다가 여자들을 불에 타죽게 만든 하성규(김준배)는 불에 타죽고,
기도원 원장을 총으로 쏘아 죽인 이장은 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난 사실 하성규 죽을 때는 사실 해국이 아버지가 신이라도 되었나란 생각이 들면서 오싹했습니다.
천용덕이 자살하기 전 오열하듯 내뱉는 말도 인상깊었습니다.
' 나를 잡으려면 대한민국을 대청소 해야할거야 ' 라는.
그의 넓은 네트워크처럼 그의 돈을 받은 사람들도 그렇게 많다는 거겠죠.
인정하긴 싫지만 현실과 너무 가까운 이야기라 참 안타까웠습니다.
일단 이장은 말과 눈빛으로 사람들을 홀리는(이장 입장에선 그렇게 보였겠죠) 유목형의 능력이 제 잇속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냐오냐 모시고 있었던 것이고, 그런 유목형을 진심으로 따랐던 것은 슈퍼주인 영지뿐이었습니다.
일단 유목형은 이장의 말을 믿고 죄 지은 사람들을 선도할 수 있다고 믿고 마을로 따랐죠.
그러나 이장은 뒤에서는 육회를 먹으며 앞에서는 생식을 하고 있었고, 죄를 반성한다는 의미 뒤에 폭력과 협박으로 사리사욕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유목형에게 정신적인 구원을 받은 영지는 이장의 협박을 받고 마을의 창녀로 전락합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그 삶에 반항하지 않는 인물로 생각되던 영지는 해국을 도우며 입지를 굳힙니다.
하지만 사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을까요. 그녀는 그저 자신의 싸움을 계속 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자신을 위한 싸움이지만 자신만의 싸움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마리를 쥐고 있는 세 인물 중 마지막으로 살아있었던 김덕천(유해진)은 정신장애가 있는듯 보이는 인물로, 이장을 따르다가 패가 해국쪽으로 기울자, 해국과 박검사 앞에 찾아와 모든 것을 토로하며 패닉상태를 보입니다. 그리고 증언을 한 다음날 이장에게 불려가 죽임을 당하죠. 이장의 수족이 되어 폭력과 살인을 했던 김덕천에게 이장은 말을 합니다. 자신이 그를 부렸던 것은 '흰도화지에 자신의 색을 입혀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라고.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의 도화지를 찢어서 미안하다며 이제 쉬라고 그를 죽입니다. 찢어진 도화지는 그림 그리는데에 쓸 수 없겠지만, 이 이장 아저씨 재활용의 미덕을 모르네요. - 여담이지만 유해진씨 연기 정말 빛을 발했습니다. 브라보!
이 장면에서도 그랬지만, 이 영화는 참 연출이 좋습니다. 클로즈업을 잘 활용하는 영화라고 해야하나. 영화치고는 긴 상영시간이었지만, 긴 원작을 담기엔 부족할거라 여겼는지 진행이 꽤 빠른 편이지만, 해설과 힌트를 놓치지 않고 뿌려 놓았습니다. 영화가 흘러가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크게 터진 달까요. 박검사의 말처럼 그림이 크고, 이장의 계획처럼 그림이 잘 나오지 않게 복잡합니다. 영화 속의 계획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도 그림이 참 크게 그려졌습니다. 빠른 진행이지만 친절하고, 곳곳에 지루하지 않은 유머코드도 듬뿍 심어 놓았습니다. 요즘 영화답게 웃음을 많이 담았지만, 그래도 그 진지함을 끊거나 빼았지 않는 적절함이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 사운드와 화면 연출이 잘 맞는다고 할까요. 에피소드들을 탄탄하게 엮어 탄탄하게 긴장감을 조이는 게 좋습니다. 연애로 치면 줄다리기를 참 잘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금저리게 하는 유혈장면은 괴롭네요.
보고만 있어도 아플 거 같아서 오금이 저려요.
예를 들어, 감방에 수감되어 있는 유목형의 발바닥을 칼로 긋는 장면이라던가.
아윽.
생각만해도 오글오글하네요.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의문이 대체 해국의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사람들을 모은 마을의 시작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스토리가 풀려갈수록 의문이 생깁니다.
기도원에 오기 전엔 왜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을까요?
그가 언제부터 종교적 믿음을 갖게 된 걸까요?
사실은 기도원 사람들을 죽인 건 유목형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영지의 증언뿐이잖아요?
영지가 그를 얼마나 신뢰하고 따랐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할 때야 그 부분에 의심이 없었지만, 반전을 겪고나니 이 부분도 미궁입니다.
죄인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뭐 여기서 성선설과 성악설을 토론해보겠다는 건 아니고, 전체적으로 세 인물과 유해국이 다투게 된 것은 '죄인으로 몰리는 정신적 압박감'에 의한 것이다 보니까 유목형의 행동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 있고, 죄를 지음에 실수란 있을 수 없다고, 자신의 마음을 충실히 하라고 가르침을 전했던 유목형이 화에 미쳐 칼을 들고 이장을 찾아갔으나 실패하는 장면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원은 마음 속에 있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심판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그 장본인이 화를 못이겨 이장을 심판하려 들었었습니다. 그게 모순이 되었죠. 결국 사람이라 완벽할 수 없는 거였을까요. '죄를 씻었다', '구원을 받는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과연 죄는 어떻게 씻는 걸까요. '죄 지은 사람'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내놓지 않고 이런 저런 객관식 예제들만 던져 놓은 모양입니다.
그러고보니 천용덕과 유목형의 관계는 유해국과 박검사의 관계와도 비슷합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천용덕과 박검사는 같은 경찰이지만 가치관의 기준이 달랐죠.
천용덕이 한 일은 옳지 않지만, 나름 그에게는 신념이라는 게 있었으니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에 박검사가 없었으면, 유해국은 영화 중반부에 이미 죽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악연이던 뭐던 인연은 참 중요한 거죠. 인맥도.
사담이지만 요즘 결혼식장에 오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어쩌나 쓸데없는 고민도 해보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생각하며 봤습니다. 악연도 필요할 때 좋은 인맥이 될 수 있으니, 역시 사람은 많이 사귀고 봐야할듯 합니다.
오랜만에 마을을 다시 찾은 유해국에게 영지가 리모델링하는 이장집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집니다. 사실 유해국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린 것은 영지였으니 말입니다. 아버지가 자연사라고 말한 이장. 그 주장에 힘을 더해 준 영지의 증언. 그러나 과연 유목형은 자연사했을까요. 아니면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지는 영지가 아무도 모르게 죽인 걸까요. 영화는 그렇게 의문을 던지며 마무리가 됩니다. 만약 영지가 범인이라면, 그림은 조금씩 틀어지게 되는데 말이죠.
전체적으로 탄탄하게 긴장감을 조여주는 연출과, 맥이 끊기지 않게 등장하는 걸쭉한 개그가 마음에 듭니다. 예를들면, 이장의 집에 찾아간 영지와 해국이, 이장의 결백하다는 말을 듣고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라고 하니 문이 열리며 유준상이 하하하 웃으면서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 지나가는 개는 아니지만 웃음이 나는군요' 라고 해서 빵 터졌습니다. 유해국과 박검사 사이의 에피소드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유해국이 그를 변호사로 사칭하며 전화를 바꾸자 자장면 먹다가 변호사 연기를 하는 박검사라거나, 초반에 휴대폰에 저장된 해국의 이름이 [유XX]에서 [유해국]으로 바뀐 거라거나. 이런 거 싫어하는 사람은 맥 끊는다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무척 재밌게 봤답니다. 그 외에 등장인물들의 걸쭉한 입담들이 참 재미있었어요. 억지스럽지 않고 적재적소에 녹아 있는 자연스런 개그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 외에 원작에서는 처음부터 밝혀졌던 '경찰이 사실 이장 아들'이라는 것이 영화에서는 후반에 슈퍼에서 증거품을 태우다가 불에 타죽는 모습으로 사실 이장 아들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원작을 보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은 그 반전에 조금은 놀랐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큰 반전은 영지의 의미심장한 웃음이지만.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가장 흔한 곳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이라는 말이 마음에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신발장에 적금통장이나 도장같은 걸 둘 수는 없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는 부분이지만,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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