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웹디자인을 7년 정도 하다가 게임 기획자로 직종을 바꿨다. 지금은 완전히 게임 기획자로 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디자인 업무와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을 하다 보면 “이건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르겠다” 싶은 순간이 계속 생긴다.
최근에는 도쿄게임쇼(TGS) 행사 준비를 하면서 이벤트 포스터를 만들고, 굿즈를 디자인하고, 전시용 제작물을 정리하고, 급기야 아트북까지 직접 만들어 인쇄에 넘겼다. 본업은 게임 기획자인데 어째 행사철만 되면 다시 디자이너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는 나에게 새롭게 배워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쓰는 오래된 공구에 가깝다.
그런 입장에서 『토도성문 일러스트레이터 아트워크』를 읽었기 때문에 먼저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난이도가 나에게 높지는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의 차이, RGB와 CMYK, 펜 툴, 패스파인더, 클리핑 마스크, 그레이디언트, 타이포그래피, 아트보드와 정렬 같은 기본적인 내용부터 시작한다. 이후 블렌드나 3D 효과, 패턴, 질감, 타이포 변형 등을 활용하고 실제 아트워크를 완성하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이미 디자인 실무를 오래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 이런 기능이 있었어?”라는 충격보다는 “이걸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구나”에 가까운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책을 읽으면서 내게 필요한 책인가보다, 회사에서 누구에게 필요한 책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얼마 전 회사에서도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모든 디자인 관련 업무를 특정 인력이 맡는 것보다 마케팅팀에서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디자인 작업을 직접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행사 하나만 준비해도 SNS용 이미지, 현장 안내물, 간단한 배너, 굿즈용 데이터 수정, 스티커나 인쇄물 제작처럼 생각보다 자잘한 디자인 업무가 정말 많이 발생한다.
이런 작업까지 모두 전문 디자이너에게 요청하면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일이 된다. 문구 하나 바꾸고, 사이즈 하나 조정하고, 이미지를 조금 옮기는 작업에도 요청서를 쓰고 결과물을 받고 다시 수정 요청을 해야 한다. 반대로 디자인 툴을 조금이라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팀 안에 있으면 간단한 수정이나 시안 정도는 즉석에서 처리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이 책의 포지션이 상당히 명확해졌다.
이 책은 전문 디자이너를 위한 고급 테크닉 서적이라기보다, 일러스트레이터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거나 기본 기능은 몇 개 알고 있지만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본 경험은 많지 않은 사람에게 잘 맞는다. 특히 기능을 사전처럼 하나씩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기능을 조합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까지 연결한다는 점이 좋다.
사실 초보자에게 가장 어려운 건 펜 툴 사용법 자체가 아니다. 유튜브에서 펜 툴 강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펜 툴도 알고 클리핑 마스크도 아는데, 막상 “그럼 포스터 하나 만들어보세요”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중간 단계를 채워준다. 기능을 배우고, 기능을 조합해 작은 그래픽을 만들어보고, 최종적으로 하나의 아트워크를 완성한다. 그래서 처음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는 사람뿐 아니라 마케팅이나 기획 업무를 하면서 직접 간단한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더 실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의 AI 관련 내용도 눈여겨봤다.
요즘 디자인 업무에서 AI를 빼놓기는 어렵다. 나 역시 업무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실제 작업을 해보면 AI가 디자이너를 통째로 대신한다기보다 초안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확인하고, 필요한 소재를 빠르게 확보하면서 작업 시간을 줄여주는 쪽에서 훨씬 현실적인 가치가 있다.
이 책에서도 AI를 무조건적인 대체재로 보기보다 디자인 과정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도구로 설명한다. 스케치를 벡터로 바꾸거나 캐릭터를 여러 각도로 확인하는 기능처럼 최근 일러스트레이터에 들어온 AI 기능도 소개한다.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그대로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이용해 출발점을 빠르게 만들고 결국 사람이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수정하고 완성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 부분이 앞으로 비전문 디자이너에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디자인 툴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실제 결과물로 옮기는 것부터 어려웠다. 지금은 AI로 아이디어와 소재를 어느 정도 구체화한 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입장벽을 상당히 낮출 수 있다. 물론 툴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디자인 감각까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강조하고,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결과물이 목적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여전히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디자인을 전혀 못하는 사람”과 “전문 디자이너” 사이의 영역은 AI 덕분에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중간 영역에 있는 사람에게 꽤 적절하다.
그래서 나처럼 이미 디자인 업무를 오래 해본 사람에게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조금 애매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상당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나 기획자 중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조금 배워서 행사 이미지나 SNS용 그래픽 정도는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두꺼운 기능 설명서를 주는 것보다는 이 책 한 권을 따라 실제 결과물을 몇 개 만들어보게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결국 내게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은 새로운 일러스트레이터 기능 하나를 배운 것이 아니라, 다른 직군의 사람이 디자인 실무에 진입할 때 어느 정도까지, 어떤 순서로 배우면 되는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회사 책장에 꽂아두고 디자이너가 보는 책이라기보다, “간단한 건 우리도 한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팀에 한 권 던져주기 좋은 책. 개인적으로 『토도성문 일러스트레이터 아트워크』는 그런 용도로 볼 때 가장 쓸모 있어 보였다.
#한빛미디어 #토도성문일러스트레이터아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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