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까지는 타로카드를 자주 보았던 것 같다. 아마도 우연히 잡지의 부록으로 받은 타로카드도 한 몫을 했고, 아버지가 철학을 하시는 것도 한 이유였을 것 같다. 원체 신기하고 특이한 것을 좋아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의미 부여하는 것 좋아하고, 남들하고 다른 것에 열광하던 녀석이라 아버지가 하시는 철학에 꽤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기가 약하다는 소릴 자주 들었고, 그 약한 기 때문인지 헛것에 지속적으로 시달려 왔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 점 집에 가본 적 없는 의심 많은 녀석. 정말로 신기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째서인지 타로카드 점이 너무 잘 맞아서 오죽하면 고등학교 졸업식 때 친구가 '동창식에서 점쟁이로 만나지는 말자.'라고 하였었지. 그 말이 계기가 되어서 타로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만지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배운 철학도 더 깊이 파고 들지 않고, 더 이상은 사람들 앞에서 '점을 볼 줄 안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 그러고보니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는 아버지께 궁합을 봐달라 한 적이 있었다. 아빠는 둘이 잘 맞지만, 오빠가 조금 손해라는 결과를 말씀해주셨는데 지금 봐도 확실히 남자친구가 늘 내게 져주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영화의 끝에서 박예진의 말처럼, 운명의 상대 같은 건, 찾아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샌가 주변에 와 있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너무 좋아해서 쫓아서 부산까지 내려온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게 알바생이 지금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가장 힘들고 기댈 곳 없고 말 하고 싶은 것 많을 때 찾는 게 점이고 점술사이면서,
필요하지 않을 때는 '점쟁이'라고 여지없이 깍여 나가는 그들.
나도 아무리 돈 많이 벌어도 그런 취급 받고 싶지는 않아서 일찌감치 손 뗀 것도 있다.
영화는 그런 점도 비꼬아주어서 기뻤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그들은 말한다.
' 중계자이자 조언자일 뿐이다'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점을 믿고 자신을 믿지 않게 되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슬픈 운명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다소 진행이 빠르고 이야기가 깊지는 않지만, 전달할 것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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