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부고 문자가 왔다. 3년여 전 관계가 끊어진 사람 A이다. 한때, 같이 술을 마시고 밤새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었다. 당시 우울증이 심했던 나의 오해였을지도 모르나 그때의 나는 A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고 생각했다. A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이중성을 떨쳐낼 수가 없었고 그 실망감과 배신감이 커서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A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자리에 A와 함께 나하고도 친하게 지냈던 B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B가 그걸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B와의 관계도 애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A와 B,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대략 2017년인가 2018년 쯤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이제 2021년이니 시간이 꽤 흘렀을 건데, A의 부친상 부고 문자를 받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일방적으로 끊은 관계에 대해 마음 한편에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단체 문자임이 분명한 연락에 나는 부의금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보낸다면 부의금을 보낼지 화환을 보낼지 고민에 빠졌다.
혼자서 냉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에는 타로카드의 도움을 받는다.
A는 부의금을 보내지 않는다. B는 부의금이든 근조화환이든 보낸다로 양자택일 스프레드를 펼쳤다.
결과는 단순했다. 그 사이에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 뜨금하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그간의 관계를 돌아보았을 때, 부의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나는 부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고 있다. 현재 상태가 악마 카드인 것을 보아 순수하게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에서 오는 고민은 아니다. 악마와의 거래는 당장은 달콤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손해 보는 거래다. 무언가 얻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내가 잃는 것을 대가로 하기에는 손해 보는 장사라는 거다. 뭔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의를 하려는 마음은 순수하지 않다.
A 상황을 선택한 나는 지금까지의 기준과 고집을 지킬 거다. 정의 카드는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내가 A에게 부의하지 않은 만큼 차후 나의 경조사에도 나는 그를 부르지 않게 될 거고 우리의 관계는 끝나게 되어 더 이상 관계가 지속되지도 새롭게 시작되지도 않을 것이다. A 상황을 선택할 경우, 나는 A와 함께 정리한 관계들을 영원히 회복하지 않고 관계가 단절될 것이다.
B 상황을 선택한 나는 허황된 별을 쫓고 있다. 내 기준을 꺾고 다른 사람의 시야에 맞춰 생각을 바꾼 덕분에 A를 비롯한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 내가 바라던 관계는 아니며, 이 일로 나는 스스로를 더 얕잡아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뭐, 어찌 보면 뻔한 결과지만, 나는 거짓된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더는 내 마음을 다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A 상황을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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