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주임 신부님과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다. 그래서 주일반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9시 30분. 조금 늦어서 35분에 도착을 했는데 이미 진작에 시작하고 있었다. 칼같다. 다음부터는 늦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예비신자 교리수업을 마치고 '세례'를 받게 되면, 이전까지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원죄'의 연대를 끊어주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내어주시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세례를 받고 원죄의 연대가 끊어지더라도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유혹에 빠지고 이후에 악에 빠지거나 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고해성사 등의 성사를 보아야한다고 하셨다.
유혹의 첫 출발은 '거짓말'이다. 지난 시간에 보좌 신부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뱀은 거짓말을 했고 하와는 과장을 했다.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뱀은 모든 것을 먹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고 하와는 과장을 한다. 그로써 뱀은 하와가 선악과에 '시선'을 두게 만든다. 견물생심인가보다. 시선이 가고 집착이 생기면 탐욕이 생긴다. '하느님이 바라는 것, 하느님'이 아닌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 유혹이다. '선택'의 결과가 '죄'인데, 아담과 하와는 남의 탓만 한다.
이것은 지금의 인간도 마찬가지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을 교리에서는 '죄'로 본다. 심리학에서도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남의 탓을 한다고 하던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남에게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한다. 처음부터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두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었는가! 하고.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에덴동산에 만들어 두신 것은 인간에게 '생명'으로 향할 수 있는 길과 '선'으로 가는 길을 열어두고 싶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기에 예를 들어 그것이 너무나 좋고 너무나 즐겁고 너무나 행복한 '잔치(파티)'라고 하자. 우리는 모두 그 곳에 갈 것이다. 하느님에게로 올바르게 다가간 이는 잔치에 기쁘게 들어갈 것이고, 죄를 다 씻지 못했고 그래서 스스로가 파티에 어울리는 행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부끄럽고 눈치가 보여서 잔치는 가더라도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잔치에 어울리는 행색을 갖추기 위해서 죄를 씻고 정진하는 과정. 그것을 '연옥'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잔치고 뭐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이고 뭐고 다 싫다고 주님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것. 그것이 '지옥'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갑자기 든 의문이, '연옥'에 머무르는 것이 스스로의 '양심'에 의해 마음이 불편함이라 한다면 '명성교회 세습 사건'등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양심을 속이는 목자들은 이미 양심을 속였는데, 당당하게 천국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가?? 이것에 대한 질문은 수업시간이 짧아서 드리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여쭤봐야겠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상징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증명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유의미한 것이라고 하셨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만 했다면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육신의 부활'은 죽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품에 가기까지의 삶의 여정에서 내가 온전히 사랑으로 채워지는 상태를 말한다고 하셨다. 살아가는 신앙의 과정에서 부활의 경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면서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부활을 상징한다고 하셨다.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은 내가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먼저 화해를 청하고 용서하고 먼저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하셨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포용하고 용서하고 화해를 청하는 것이 '죽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한 부부가 있고 남편의 잘못으로 부부가 싸웠다고 하자. 남편의 잘못이고 아내에겐 잘못이 없었다고 해도 아내가 먼저 화해를 청하고 받아들이면 남편의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여 남편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고 해도 먼저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님의 수난공로를 체험한 것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용서할 수 없는 죄와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끊어내고 용서하고 미움을 버림으로써 예수님의 수난공로를 체험하고 주님께로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하셨다. '용서'는 '내게 용서받을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하셨다. '미움'을 마음에 오래 품으면 영적인 고름이 생기고 질병을 일으킨다. '미움'을 마음에 품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충만하고 사랑으로 가득찰 수 있도록 하신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Q. 세례를 받으면 세례를 받기 전의 죄는 씻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고 나면 그 이후에는 그냥 살아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건가요? 세례를 받으면 땡인 건가요?
- 세례를 받으면 '원죄'의 연대가 끊어진다. 죄를 지으면 잉크가 손수건이 묻은 것처럼 고해성사를 하고 씻더라도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고 얼룩이 남는다. 그 얼룩을 깨끗이 지우기 위해서는 '애덕'을 실천해야한다. 선행과 용서, 기도로 얼룩을 지워가야한다.
같이 교리수업을 받는 이가 이런 말을 했다. 최고의 자기개발서는 '성경'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성당을 다니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원활해졌다. 주님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용서'하고 '화해'를 청함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충만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대림 제 3주일이다. 미사가 끝나고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파견성가를 불렀다. 본래 예비신자 교리수업은 교리반이 시작되고 한 달까지만 신입생을 받는데 지난 수업에 특별히 세 명이 더 들어왔다. 아무래도 중간에 들어오다보니 앞부분 수업을 전혀 듣지 못해서 미사 중에 난감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봉사자님이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시는 걸 들었다. 그래도 두 달 먼저 시작했다고 여쭤보는걸 설명을 해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1층에 주임 신부님이 계셨다. 교우분들께 악수하시며 인사를 하고 계셨다. 내게도 악수를 청하시며 교리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아무래도 수업때 질문을 해서 얼굴을 익히신 것 같다.
마리아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 나오는데, 벽면에 이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청소년 분과에서 진행하는 성탄제 포스터다. 토요일에 진행을 하는 것 같은데 제목이 너무 재미있었다. 예수님네 민박이라니. ㅎㅎㅎㅎ 시간이 되면 한 번 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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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준비 한창인 성당 |
예비신자 교리수업을 마치고 '세례'를 받게 되면, 이전까지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원죄'의 연대를 끊어주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내어주시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세례를 받고 원죄의 연대가 끊어지더라도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유혹에 빠지고 이후에 악에 빠지거나 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고해성사 등의 성사를 보아야한다고 하셨다.
유혹의 첫 출발은 '거짓말'이다. 지난 시간에 보좌 신부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뱀은 거짓말을 했고 하와는 과장을 했다. 하느님께서는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뱀은 모든 것을 먹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고 하와는 과장을 한다. 그로써 뱀은 하와가 선악과에 '시선'을 두게 만든다. 견물생심인가보다. 시선이 가고 집착이 생기면 탐욕이 생긴다. '하느님이 바라는 것, 하느님'이 아닌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 유혹이다. '선택'의 결과가 '죄'인데, 아담과 하와는 남의 탓만 한다.
이것은 지금의 인간도 마찬가지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을 교리에서는 '죄'로 본다. 심리학에서도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남의 탓을 한다고 하던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남에게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한다. 처음부터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두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었는가! 하고.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에덴동산에 만들어 두신 것은 인간에게 '생명'으로 향할 수 있는 길과 '선'으로 가는 길을 열어두고 싶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기에 예를 들어 그것이 너무나 좋고 너무나 즐겁고 너무나 행복한 '잔치(파티)'라고 하자. 우리는 모두 그 곳에 갈 것이다. 하느님에게로 올바르게 다가간 이는 잔치에 기쁘게 들어갈 것이고, 죄를 다 씻지 못했고 그래서 스스로가 파티에 어울리는 행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부끄럽고 눈치가 보여서 잔치는 가더라도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잔치에 어울리는 행색을 갖추기 위해서 죄를 씻고 정진하는 과정. 그것을 '연옥'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잔치고 뭐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이고 뭐고 다 싫다고 주님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것. 그것이 '지옥'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갑자기 든 의문이, '연옥'에 머무르는 것이 스스로의 '양심'에 의해 마음이 불편함이라 한다면 '명성교회 세습 사건'등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양심을 속이는 목자들은 이미 양심을 속였는데, 당당하게 천국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가?? 이것에 대한 질문은 수업시간이 짧아서 드리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여쭤봐야겠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상징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증명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유의미한 것이라고 하셨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만 했다면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육신의 부활'은 죽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품에 가기까지의 삶의 여정에서 내가 온전히 사랑으로 채워지는 상태를 말한다고 하셨다. 살아가는 신앙의 과정에서 부활의 경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면서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은 내가 세상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부활을 상징한다고 하셨다.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은 내가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먼저 화해를 청하고 용서하고 먼저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하셨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포용하고 용서하고 화해를 청하는 것이 '죽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한 부부가 있고 남편의 잘못으로 부부가 싸웠다고 하자. 남편의 잘못이고 아내에겐 잘못이 없었다고 해도 아내가 먼저 화해를 청하고 받아들이면 남편의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여 남편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고 해도 먼저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님의 수난공로를 체험한 것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용서할 수 없는 죄와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끊어내고 용서하고 미움을 버림으로써 예수님의 수난공로를 체험하고 주님께로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하셨다. '용서'는 '내게 용서받을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하셨다. '미움'을 마음에 오래 품으면 영적인 고름이 생기고 질병을 일으킨다. '미움'을 마음에 품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충만하고 사랑으로 가득찰 수 있도록 하신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Q. 세례를 받으면 세례를 받기 전의 죄는 씻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고 나면 그 이후에는 그냥 살아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건가요? 세례를 받으면 땡인 건가요?
- 세례를 받으면 '원죄'의 연대가 끊어진다. 죄를 지으면 잉크가 손수건이 묻은 것처럼 고해성사를 하고 씻더라도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고 얼룩이 남는다. 그 얼룩을 깨끗이 지우기 위해서는 '애덕'을 실천해야한다. 선행과 용서, 기도로 얼룩을 지워가야한다.
같이 교리수업을 받는 이가 이런 말을 했다. 최고의 자기개발서는 '성경'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성당을 다니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원활해졌다. 주님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용서'하고 '화해'를 청함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충만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주 주보에서 읽은 인상 깊은 구절이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느님께 얻어내려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렇다. 나는 지난번 주님 앞에 기도드렸던 것처럼 나 스스로를 위해서 빌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어렵고 버림받고 낮은 곳에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나보다 더 어렵고 더 버림받고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님을 부르지 않겠다고. 지금도 나는 충분히 주님께 선물받은 삶을 살고 있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졌으니까.
여러모로 유익했던 교리수업이 끝나고 교중 미사에 참여했다.
오늘은 대림 제 3주일이다. 미사가 끝나고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파견성가를 불렀다. 본래 예비신자 교리수업은 교리반이 시작되고 한 달까지만 신입생을 받는데 지난 수업에 특별히 세 명이 더 들어왔다. 아무래도 중간에 들어오다보니 앞부분 수업을 전혀 듣지 못해서 미사 중에 난감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봉사자님이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시는 걸 들었다. 그래도 두 달 먼저 시작했다고 여쭤보는걸 설명을 해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1층에 주임 신부님이 계셨다. 교우분들께 악수하시며 인사를 하고 계셨다. 내게도 악수를 청하시며 교리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셨다. 아무래도 수업때 질문을 해서 얼굴을 익히신 것 같다.
마리아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 나오는데, 벽면에 이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청소년 분과에서 진행하는 성탄제 포스터다. 토요일에 진행을 하는 것 같은데 제목이 너무 재미있었다. 예수님네 민박이라니. ㅎㅎㅎㅎ 시간이 되면 한 번 가 보아야겠다.
일과를 마치고 나오니 12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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