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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강] 게임기획 마지막 수업

1학기도 막바지. 4월부터 수업을 나갔었으니 고작 두어달. 적응하기도 전에 수업이 끝났다. 사실상 '게임기획'을 가르치기로 했을 때,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욕심으로 나갔는데, 그게 잘 안됐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 있는데, 남은 시수가 얼마나 있는지 짐작을 하지 못해서 수업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생각했던 진도도 다 나가지 못한 것 같다. 기본적인 이론이나, 개발자의 마음 가짐 같은, 이 업계에 새로이 들어와 동료가 될 사람이 갖추었으면 하는 부분들에 대한 전달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마지막 수업이고, 본래는 기존에 내 준 과제의 발표를 하면서 평가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으나, 수업 시간 관계상 모든 아이들이 다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과제는 문서로 우선 평가를 마치고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시간을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말고사 범위에 대한 힌트를 주고, 과제와 중간고사 점수에 대해 발표를 해 주고, 과제 발표를 하고 피드백 받고 싶은 사람은 하라고 하니 A반은 반응이 쌔하더라. 발표해도 추가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고 하니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아예 안 할수는 없으므로 느긋하게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고 피드백을 하곤 했는데 더없이 루즈한 시간이었다.

점심 먹고 오후 시간의 B반은 조금 분위기가 다르더라. A도 줬으니 B에도 기말고사 범위에 대한 힌트를 줬고, 중간고사 점수와 과제 점수에 대한 발표도 했다. B반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딘에서 감점이 되었는지 디테일한 평가를 궁금해했고, 과제와 평가표를 짚어가며 부족한 점들을 피드백 해줬다. 발표에 대해서도 굳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피드백 받고 싶어서 나와서 발표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과제 완성도가 높은 아이들이 많았고, 1차 과제에 비해서 과제 이해도가 높아진 아이들도 많았다. 사실 빠릿빠릿하게 따라오는 분위기가 아니고 질문이나 대답도 적어서 수업이 힘들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수업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팝업처리 혹은 씬 전환 처리의 차이 설명
 
그러다보니 과제에 대한 적극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졌는데,

1. 기획자가 그래픽 아티스트에게 전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오브젝트의 위치를 전달하면 좋은지. 좌표 설정, 픽셀 설정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2. 게임 애니메이션 관련하여 프레임 개념과 애니메이션에서 쓰는 프레임과 게임에서 주로 쓰는 프레임에 대해 설명하고 게임 애니메이션을 재생할 때, 프레임 안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3. 팝업창과 씬전환에 대해서 설명하고 팝업창을 띄우는 경우와 씬전환을 하는 경우의 차이에 대해 설명. 어떤 경우에 팝업창을 사용하고, 어떤 경우에 씬 전환을 사용하는지. 팝업창을 사용할 경우의 주의점 등에 대한 설명을 했다.

지난번에 과제로 비주얼노벨을 해 온 덕에 '비주얼 노벨의 게임으로써의 분류 유무'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확실히 과제의 다양성이 수업의 깊이를 좌지우지 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준비한 내용 외에는 결국 질문의 양과 과제의 충실함에 따라 추가적인 지식 전달의 양이 달라지는 것 같다. 다른 반에 설명해줬다고 해도 같은 내용의 발표 및 질문이 없는데 맥락없이 이야기를 꺼내기도 애매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질문을 하지 않는데 나서서 알려주지는 않는다. 수업시간에 과제를 하면서 열심히 질문을 했지만, 주제랑 일치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해주지 않았고 결국 주제 연관성에서 감점을 받은 학생도 있었다.


수업 마지막에는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사무실 들어가기 귀찮은 마음 반, 수업은 끝났는데 학교를 떠나기 아쉬운 마음 반.
원래 커피를 잘 안 마시는데 어쩐지 학교만 오면 한 잔 이상은 마시게 된다.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났고 다음주 기말고사를 마치면 1학기도 끝이다.
그런데 아직도 아이들한테 받은 커피 쿠폰(feat.도서관)이 그득하다. 언제 다 마신담..

"서둘러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할 필요는 없어. 모두가 개발자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야. 좀 더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는데 시간을 써도 좋아. 나는 스물 아홉에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알았거든."

커피잔을 앞에 두고 수업시간에 내가 한 말을 곱씹어 보면서 뒤늦게 작은 깨달을음 얻는다. 나는 여러번의 시행착오(혹은 다양한 경험이라고 하자)를 통해 남들보다 늦게 나의 길을 찾았다.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지만 즐겁게 하루를 살고 있다. 그러고 문득 깨달은 것이다. 나는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한 발자국씩 아주 천천히 걸어왔는데, 아이들한테는 하루 하루 빠른 걸음으로 걷기를 바란 건 아닌지, 괜한 조바심을 가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아이들도 그렇다. 오래 보아야 걷는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조금씩 앞으로 걷고 있는 아이들을 학기가 끝나가서야 보게 된다.
그걸 이제서야 보게 되어 많이 아쉽다. 빨리 따라오지 못해도 분명히 천천히 호감을 느끼고 호기심을 가지며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떼는 아이들이 있었음이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노력하는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내가 가진 기획자로써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같이 일하는 프로그래머는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 이라고 했다. 2학기를 맡게 될지 맡지 않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작은 발걸음을 눈치 챈 아이들에게 조금 더 사적으로 시간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면 충분히 더 나아갈 수 있을 아이들"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다.

한 학기의 짧은 수업으로 무엇을 얻었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금 내가 게임 개발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좋은 기회였고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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