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나의 서천 여행 01 : 문헌서원

10월 7일에 수술을 받고 3일여에 퇴원했다. 담낭 절제술이 아무리 복강경이라고 하더라도, 퇴원 당일부터 놀러 다닌 것은 좀 지나쳤다고 생각하긴 한다. 아무튼 퇴원한 당일, 어디를 갈까 하다가 '문헌서원'에 가 봤다. 어릴 때부터 쭉 서천군에서 살았었는데, 이름만 들었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그곳에 어쩐지 가보고 싶어서였다.


어쩐지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다. 입원할 때 별로 짐을 많이 챙기지도 않았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집에 와서 짐을 풀었다. 바다의 물은 저 멀리까지 빠져 있었다. 사실 나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엄마는 나랑은 반대로 쉬는 날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엄마의 성향에 따라 집을 나섰고, 어디를 갈까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뱉은 곳이 바로 문헌서원이었다.


문헌서원에 도착해서 만난 '서천군 관광안내도. 그렇다. 내가 서천군을 떠날 때만 해도 서천은 작은 동네였고 딱히 볼만한 거리도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철새 도래지 외에도 볼 것이 참 많은 곳이 되었다. 물론 지금 찾아온 문헌서원은 내가 초등학생 때에도 있던 곳이긴 하다. 그도 그럴게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니까. 아닌가, 고려 시대인가...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문화해설자님의 사무실. 그리고 그 옆에는 관광안내소와 화장실이 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오늘은 추석 연휴를 보내고 문헌서원의 휴일이었기 때문에 건물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밖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문화해설자님이 계시기는 했지만, 휴무일이므로 따로 일을 하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문화해설자님의 사무실 앞에서 발견한 오묘한 배너. 그렇다. '서천 구석구석 스탬프 여행'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따로 시즌 운영도 아닌 것 같았다. 스탬프라고 하면 '부산도시철도 스탬프 수집'은 물론, '김해관광 스탬프'도 다 섭렵한 나다. 원래 문헌서원만 살짝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것이 있다고 하니 욕심이 생겼다.


일단 문헌서원에서 스탬프 하나 찍고!! 이곳을 시작으로 생태원, 신성리 갈대밭, 이상재 선생 생가지, 조류생태전시관, 한산모시관, 장항 스카이워크까지 다 털었다. 엄마는 완주 기념품이 무엇일는지는 몰라도 기름값도 안 나오겠다고 하셨다. ㅋㅋㅋ



주차장 바로 옆으로 전통 건물 같아 보이는 것이 있고 그 앞에 종합안내판이 붙어 있다. 건물은 문헌서원 전통호텔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숙소인 것 같다. 템플스테이하듯이, 김해에도 이 비슷한 숙소 체험 개념의 건물이 있는데 그거랑 비슷한 건가 보다. 비수기인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이렇게 가로등마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것을 배너라고 부를지 현수막으로 부를지 모르겠다. 아무튼 하단에는 '문헌서원'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상단에는 웬 어르신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현수막의 글들은 모두 다른 글이지만, 그 글의 글쓴이는 모두 같았다. 글쓴이는 바로 목은 이색. 어? 목은 이색??? 사극 정도전에 나오던 고려의 그..??


그렇다. 이곳은 '목은 이색' 선생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서원이라 함은, 조선시대에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지방에 세운 사학이다. 학원 같은 것이다. 목은 이색 선생은 고려 말 그의 문하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으로 불린다. 꽤 유명하신 분이다. 문헌서원은 고려 말 대학자인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서 1576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극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역사의 현장에 와 있으니 또 기분이 오묘해지는 것이다.


문헌 전통호텔 앞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홍살문이 나타난다. 문 상단에는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다. 문 너머로 비석들이 보인다.

문헌서원의 관람료는 기본적으로 무료고 교육관 이용은 별도 비용이 있다. 하절기(3~10)는 9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동절기(11~2)는 9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고, 클로즈 30분 전까지 입장해야 한다. 본래 매주 월요일에 휴무인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에는 개관하고 그 다음날 휴관하다 보니 내가 간 날은 휴관이었다.



홍살문을 지나면 왼편으로는 비석들이, 오른 편으로는 연못이 보인다.


연못 위에는 한쪽이 땅에 걸쳐진 모양으로 정자가 하나 있다. 경현루라는 이름이다.


경현루 옆으로 벤치가 놓여 있어서 가을 분위기 느끼며 인생샷 건지기에도 좋아 보인다. 다만, 이날 나랑 엄마는 둘 다 쌩얼이었고 날씨도 별로였기에 인생샷을 건지지는 못했다.


연못 옆으로는 문헌서원 내부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날은 휴일이기 때문에 진수당으로 가는 진수문 너머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밖에서 담너머로 슬쩍 구경을 하며 우물과 묘소 구경을 하기로 한다.


홍살문을 따라가 큰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도랑을 따라 왼쪽으로 쭉 걸으면 수각 아래 우물이 나온다.


조롱박도 가져다 놓은 것을 보면 마셔도 되는 물인 것 같다. 바닥의 돌이 불규칙한 듯 규칙적이라 예쁘게 박혀 있다. 목이 마르지도 않았고 이제 막 퇴원한 참이라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하기에 물을 마시지는 않았다.


우물로 가는 와중에도 단풍나무들과 벤치들이 놓여 있어서 사진 찍기에는 참 좋다. 다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날 날씨도 흐렸고 우리는 쌩얼이었기에 인생샷은 건지지 못했다.


우물가에서 바라본 서원의 모습. 하필이면 휴일이라 못 들어가 보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다음에 다시 와봐야겠다.



중앙에 난 돌길을 따라서 서원으로 간다. 서원 왼쪽의 길로 올라가면 목은 이색 선생 영당(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이 있는 곳이 나오는데, 영당삼문으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휴일이므로 들어갈 수 없다. 그 앞에는 목은 이색 선생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스크래치가 심해 사진상으로는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지만 직접 가서 보면 빼곡하게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색 신도비 아래쪽에는 비석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이 신도비는 고려 말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목은 이색의 업적을 가리기 위해 1433년(세종 15년)에 세웠으며 글은 호정 하륜이 지었다. - 그렇다. "소인, 하륜이옵니다."의 그 하륜이 지었다.
목은은 고려 말 충절을 지켰던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삼은으로 불린다. 그는 공민왕 때에 전제 개혁, 국방개혁, 교육 진흥, 불교 억제 등 여러 가지 개혁 정책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으며, 중국의 원.명 교체기에는 친명 정책을 지지했다. 그리고 고려 후기에 유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의 폐단으로 인해 민심이 어지러워지자 불교를 유학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점진적인 종교개혁을 통해 그 폐단을 없애고자 했다.
우암 송시열은 이 비의 뒷면에 자신이 지은 음기에서 '나는 항상 고려사를 읽다가 정도전이 목은 선생의 죄를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책을 덮고 깊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하면서 정도전과 하륜, 권근의 평전 기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담 너머로 슬쩍 슬쩍 서원 안쪽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어차피 들어갈 수 없으므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묘소로 향했다. 엄마는 산을 오르는 것이 싫다고 안 가셨다.



신도비를 지나 서원 왼쪽의 언덕을 쭉 올라가면 돌길 끝에 보이는 언덕에 이색 선생의 묘소가 있다. 사실 목은 이색 선생의 묘소 외에도 서원 뒤쪽으로도 몇 채의 묘소가 보인다만, 안내도에는 목은 이색 선생의 묘소에 대해서만 적혀 있었다.


이색 선생의 묘소 앞까지 와서 내려다 본 서원의 모습.



서원 좌측의 기린산 중턱에 위치한 이색 선생의 묘소. 가까이 다가가보니 묘가 두 개가 있다. 안내 책자를 보면 위 쪽의 묘가 이색 선생의 묘이고, 아래의 묘는 선생의 셋째 아들 이종선의 묘라고 한다. 묘자리를 무학대사가 정했다고 한다.


무덤은 평범하게 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양옆에 망주석, 문인상, 마상(소인 줄 알았는데)이 각 2기씩 세워져 있다. 아들 이종선의 묘 앞에도 망주석과 문인상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그 아들도 문인이었나 보다.


묘소 옆의 평범하게 세워져 있는 단순한 형태의 비석에는 '목은 선생 이색 지묘'라고 심플하게 적혀 있다.



문인상 옆으로 묘의 안내문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목은 이색 선생을 만난 날. 역사 빠돌이에다가 이방원 팬인 민민이 같이 있었다면 주저리주저리 역사 이야기를 신나게 펼쳐 놓았을 텐데. 어쩐지 혼자라서 아쉬웠다. 휴일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하고. 다음엔 휴일 아닌 날로 맞춰서 민민과 꼭 함께 가 보아야겠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샷시문, 유리문, 현관문 방화문으로 교체비용, 방화문으로 바꾸는 가격

샷시문 방화문으로 교체. 유리문 방화문으로 교체. 현관문 철문 교체. 현관문 철문 가격. 내가 왜 이런것을 알아보았느냐면, 우리집에는 현관문이 2개가 있다. 1층 현관문과 2층 현관문. 2층 현관문은 보시다시피 알루미늄 샷시에 유리가 끼워져있는 매우 부실한 현관문이다. 물론 1층에도 현관문이 하나 더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여기는 지금 안락동집처럼 외부 창고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택배를 받기가 애매해서, 부피가 큰 택배를 받을때 1층 현관문을 열어두기 위해 2층 현관문을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집 문의 크기는 아래와 같다. (cm) 문틀포함 문높이 171 / 문틀포함 문폭 76 문틀비포함 문높이 172 / 문틀비포함 문폭 69 문틀면 폭 5~6 문윗 스틸 폭 10 / 문옆 스틸폭 7 / 문가운데 스틸폭 10 / 문아래 스틸폭 50 문윗유리 가로 54 / 문윗유리 세로 69 문아랫유리 가로 54 / 문아랫유리 세로 30 안락동집 근처 문마트라는 곳에 가서 사이즈와 사진을 보여주고 견적을 받았다. 지식인은 물론 카페와 블로그, 각종 사이트 등에서 나와 같은 경우를 찾아 보고 엄청나게 알아보았으나, 다들 교체비용이 40~50만원이 든다고 하더라. 집근처에 문마트가 있다는 걸 떠올리고 직접 견적을 내러 가보니 문틀 포함해서 시공비까지 27만원이라고 했다. 샷시문 철문으로 교체, 현관문 철문으로 교체하는게 27만원이면 충분하다. 주문하고 맞춤 제작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공 완료까지 일주일정도 소요가 된다고 한다. 나 말고도 막막하게 인터넷으로 알아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보 공유차 글을 올려본다. 불안에 떨지말고, 문을 철문, 방화문 교체하는거 크게 비싸지 않다. 한달 월세만큼이면 충분하니 집주인하고 상의해보거나 해서 부산분이라면 교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철문이라고 해도 문에 틈이 있으면 장도리로 뚫리고, 홀커터로 털릴 수도 있는거라 완전한 안전지대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지 않은가. 더

천주교 성경책 구입

수요일 교리를 마치고도 봉사자님께 질문을 드렸었지만, 천주교는 개신교와는 성경이 다르다. 사실 나는 9월 말에 프리마켓에서 중고로 구입한 '개신교 성경책'이 있다. 그때만해도 내가 몇주 뒤에 성당에 다니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교양서 읽듯이 읽어보려고 샀었다. 하지만 '우리말 성경'이라고 해놓고서 번역이 엉망진창이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했다. 제대로 보지 못하고 구석에 처박힌 개신교 성경은 뒤로하고, 천주교 성경이 필요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신자의 가정에 비치해야할 물건에는, 성경책, 가톨릭기도서, 성가집, 십자고상, 성모상, 묵주 가 있다고 했다. 사실 교재 공부를 할 때도 성경이 필요해서 성경책을 하나 구입하려고는 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달랑 대,중,소에 1단, 2단 이렇게 쓰여져 있는데 무슨 소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퍼가 있고 없고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곁에 두고 자주 읽을 책이니 직접 보고 결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천주교 수영성당으로 향했다. 2단으로 된 성경책을 사가지고 왔다. 재미있게도 이 성경책은 모든 곳에서 판매가가 29,000원이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신기한 일이다. 세로 22cm, 가로는 15.5cm 정도 된다. 2단이지만 폰트가 깔끔하고 읽기 편하게 되어 있다. 굵기도 적당해서 수시로 펴고 읽기에 좋았다. 개신교 성경처럼 화려하지도 장식이 있지도 않지만, 표지는 감촉이 좋고 책장 넘김도 좋고 책갈피 줄도 두 줄이나 있다. 크기도 딱 적당하다. 매우 마음에 든다. 이렇게 나의 첫 신앙물품은 당연하게도 성경책이 됐다. 교회 공용으로 사용하는 성경이 있다니. 이것도 천주교라서 가능한 걸까. 내가 구입한 책은 2017년 5월 1일에 재판된 책이다. 이제 공부 준비는 충분한 것 같다. 책상 위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의 책꽂이에 성경책과 교재를 꼽아 두었다. 언제라도 꺼내서 볼 수 있도록. 사실 성경책은 그날의 독서에

화장실 문이 잠겼을 때 여는 방법

10일. 손님이 왔다가 갔다. 손님이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나중에 손님이 집에 간 뒤 들어가려고 보니까 화장실 문이 안에서 잠겼다. 이런 망할. 일단 급한대로 가까운 지하철역 화장실에 다녀왔다. 현관문에 붙어 있는 열쇠상에 다 전화를 돌렸지만, 새벽 한 시에 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슈퍼가서 손톱가는 것을 사와서 집에 있는 클립과 함께 진지하게 화장실 문따기를 시작했다. 우리집 화장실은 안쪽으로 열리는 타입이라 턱이 있어서 난이도가 좀 있었다. 손톱 가는 것과 클립 펼친 것과 제본 표지였던 플라스틱 접은 것으로 사투 끝에 문을 여는데에 성공했다. 문을 열고 원인을 확인해보니, 보통은 화장실 문은 잠그고서 안에서 문고리를 돌리면 같이 열리는데, 이 문은 안에서 문고리를 돌리면 열리기는 하는데 잠금은 안 풀리는 것이다. 그래서 닫힌 뒤에 밖에서는 열리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앞으로 손님이 올 때는 이점을 꼭 당부를 드려야겠다. 진짜 식겁했다. 아무튼 문을 따고 나서 이쪽으로 전직을 해야하는 걸까나 라는 그런 생각을 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