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주연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게 됐다. 제26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라서 후보작 상영제에서 상영하는 것을 보게 됐다. <아가씨>가 개봉했을 때 터진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의 스캔들 이후,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것 아니냐며 구설수에 올랐던 영화였고 <불륜>이라는 소재를 떠나서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픽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관람을 꺼려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불륜>을 소재로 다룬 콘텐츠는 아주 많다. 무수히 넘쳐나는 아침의 막장드라마들부터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소재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도 소재면에서는 사실 독특할 것이 없는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터부시 되는 이유는 감독과 배우의 불륜이라는 이야기가 현실의 그것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해할까 싶어서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불륜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쓰면 누군가가 득달같이 달려 들어서 '김민희 지인이냐'. '김민희 본인이냐' 등등의 말로 시작하는 시비가 붙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해둔다.
나는 미래를 믿지 않는다. 당장 내일 아침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일이다. 결혼 날짜까지 오가던 오랜 연애가 파투 났던 시간부터, 나는 미래를 장담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데 만족하는 사람이 됐다. 이 영화 속의 '영희'도 미래가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녀는 오히려 나보다 심하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상태니까.
영화가 시작한 시점부터 끝날 때까지, 영화는 마치 스마트폰으로 대충 찍은 것처럼 밝지도, 예쁘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화면을 보여준다. 당연히 노린 거겠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는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로 '영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꾸밈이 없이 '영희' 그 자체를 관객이 보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기교나 부드러움 없이 그저 '영희'를 조명한다. 영화는 대체로 채도가 낮은 회색빛을 띄고 있다. '예쁘다'라고 말하는 영희의 대사에도 풍경들은 예쁘기보다는 우중충하다. 그녀가 '예쁘다'라고 말하는 것들을 카메라가 비추지만, 그 무엇도 예쁘다는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푸른 바다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분위기는 쓸쓸하고 우울하고 우중충하다 못해 칙칙하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 영화에서 '영희'는 계속 비어있다. 불륜녀로써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하고, 외로워하고,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기다리는 그녀의 깊은 고독이 보이는 연기가 좋았다. (자기 얘기니까 그렇겠지라는 비난은 제쳐두자.)
1부와 2부에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듯한 검은 존재는 아마도 그녀를 따라다니는 고독. 혹은 외로움 같아 보였다. 파란 바다를 보여주는 호텔 창문이 더럽다는 듯 열심히 닦고 있는 검은 존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무심하게 '영희'를 조명하고 있지만, 사실 그 주변의 인물들도 깨알같이 감독이 하고픈 말들을 연기해내고 있다.
그 사람도 영희를 정말 좋아한 것 같아.
서로 좋아한다는데 왜 자기들이 난리인 거지.
할 일이 없는가 보지.
영화 내내 외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그러면서 애써 괜찮고 씩씩한 척하는 영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생각 없어 보이고 얄미워 보이는 그녀의 솔직한 말들이, 하고 싶은 다른 말을 숨긴 것처럼 들린다.
모두가 회색빛인 가운데, 감독 상원의 일행과 영희가 만난 부분에서는 잠시 분위기가 밝다. 흑백 영화를 쭉 보다가 갑자기 컬러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확 밝은 느낌이다. 술을 마시며 '사랑할 자격'에 대해서 울분을 토하던 영희는 여기에서는 자신이 모든 것을 파괴했다고 자조하며 화를 낸다. 그런 그녀에게 상원은 책의 한 부분을 읽어주고 영희는 그 구절에 마음이 풀려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배시시 웃는다.
여기까지. 나는 홍 감독이 자신의 연인에 대한 사랑을 아주 듬뿍 녹여 낸 영화라고 생각했다. 아니, 했었다. <불륜>이라는 키워드에 묻혀 버린 '김민희'라는 존재의 '예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구설수에 오르기 전 예쁘고 연기도 출중한 여배우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의젓해 보이지만 흔들리고 불안하고 외로워한다. 솔직하다고 하지만 솔직하지 않다. 그리고 깊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힘듦과 내면의 고민과 주변 사람들과 엮이며 했을 마음고생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감독이 자신의 진심을 내비치는 부분을 꿈으로 처리해버렸을 때, 나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야 감독이 아니니 알 수 없다. 나는 불륜을 옹호하지 않지만, 그들의 사랑이 '남의 일'이기에 뭐라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배우 김민희에 대해 조명한 영화에서 자신만은 쏙 빠져나가 버리는 흐름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의 마음은 너를 향해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의 옆으로 갈 수 없다는 그런 느낌을 가졌다. 불륜을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륜은 김민희 혼자 한 것이 아니다. 둘이 같이 한 것이다. 그런데 왜 비난은 그녀에게만 가는 건지 모르겠다. 자기 남자친구 욕을 신나게 하다가 같이 욕해주면 '네가 뭔데 내 남자친구를 욕해'라고 정색치는 여자 마냥. 이런 상황을 같이 만들어놓고, 그래놓고 '꿈'으로 마무리를 짓는 감독의 비겁함이,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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