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부일영화상 2017 후보작으로 선정된 영화 <연애담>.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성 소수자 영화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다. 사실 나는 이런 영화가 있는지 몰랐는데, 부일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어서 후보작 상영제에서 상영을 해 주었기에 좋은 기회에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부일영화상 2017에서는 신인감독상, 신인여자연기상에 후보로 올랐다. 평범한 외모로 평범한 연애담을 잔잔하게 보여준 여주인공 이상희가 후보에 올랐다.
따뜻하고 담담한 연애담. 그 겨울,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녹여내던 두 사람의 이야기. 하지만 퀴어 영화이기에 피해 갈 수 없는 <주변인>을 다루고 넘어가는 영화, <연애담>이다.
저녁 8시. 나름 늦은 시간대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전날 상영작은 늦은 시간이라 보지 않고 집에 갔는데, 이 영화는 어쩐지 꼭 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러 갔는데, 주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와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영화가 19금이라서 보러 온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연애담>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처럼 편안하게 찍힌 듯한 영화지만, 좀 더 따뜻한 색감을 가진 영화다. 추운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영화는 참 따뜻해 보인다. 미술을 공부하는 윤주는 놀랍게도 서른두 살이더라(영화에서 나이가). 졸업 전시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지수는 누가 봐도 예쁜 얼굴. 한 번 보면 사실 쉽게 잊기 어려울 만큼 예쁜 얼굴이다. 같이 보러 간 동생(여자)이 여자 주인공 너무 이쁘다고 저런 얼굴로 세상을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라고 말했다. 확실히 예쁘긴 했다. 사실 연애담은 네이버 영화 페이지의 줄거리와는 달리, 지수를 향한 윤주의 짝사랑에서 시작된다. 지수에게 담배를 사주고, 지수가 일하는 가게에 굳이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가고. 그렇게 지수도 따뜻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윤주에게 호감을 느끼고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퀴어 영화라는 특별함은 잠시 뒤로하고. 둘은 아주 평범하고 따뜻한 연애를 한다.
- 버스 기다려주기.
- 일 끝나고 만나기.
- 같이 밥 먹기.
- 술집에서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 서로 체온을 나누기.
-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찾아가기.
- 연락 안 되는 애인 걱정하기.
- 술집 말고 다른 데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질투 섞인 걱정하기.
- 원거리 연애에 답답해보기.
- 서로 연애에 미쳐 일상에 게을러져보기.
- 일상이 바빠 서로 데이트도 연락도 자주 못해서 서운함을 쌓기.
동성 커플이지만 이성 커플이 하는 그 모든 것과 그 모든 감정 교차를 겪는 연인의 이야기가 더없이 평범하다. 흔히 <백합물>로 소비되는 콘텐츠들처럼 자극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미화되지도 않았다. 그저 누구나 연애하면 있을 법한 둘의 담담한 연애담을 풀어낸다. 아마 그 점이 일반 관객은 물론 퀴어에게 더 좋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두 커플은 동성 커플이기에 이 <연애담>에는 한계가 온다. 장애라고도 할 수 있다. 감독의 의도를 떠나서 내가 보기엔 윤주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자기가 남자에 관심이 없었고 연애를 하지 않았었구나라고 스스로에 대해 납득을 한다. 다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친한 친구 영호에게 자신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쉽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다행히 영호는 포비아가 아니었고 윤주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래서 아마 그녀는 '너 그렇게 아무 데나 말하고 다니면 친구 잃어.'라고 말하는 지수의 충고가 와 닿지 않았을 거다. 연애에 빠져서 학업을 충실히 하지 못하는 점이야 굳이 동성 커플이 아니더라도 비일비재하게 있는 일이다. 그보다는 지수와 트러블이 생기고 그 마음고생을 털어놓은 대상이 이미 커밍아웃을 한 영호가 아니라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이자 함께 살 정도로 가까운 룸메이트 영은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영호가 남자이고,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연인인 지수를 소개하고 싶지 않았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은에게 하는 실수를 범한다. 영은은 포비아다. 그리고 그들이 일상에서 흔하게 만나는, 흔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 중의 하나다. 윤주가 영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상세하게 그리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를 시작하고 시간이 흐른 뒤 어색해진 두 사람을 조명한다. 영은이 말한다. '그런 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라고. 같이 살기 전에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여기에서 포비아가 하는 일반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성애자는 남자든 여자든 이성이라고 무조건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가 모든 여자를 좋아하지 않고, 여자가 모든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윤주가 레즈비언이라고 하더라도 영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은은 윤주의 정체성이 달갑지가 않다. 사실 동성애자 룸메이트와 산다는 것은 영은에게 있어서 남자랑 룸메이트를 하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수시로 자신의 집에 남자친구를 데려오는 영은이 윤주에게 말하기엔 윤주가 좀 억울하겠지만 말이다. 결국 쉽게 영은에게 말했던 윤주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독립을 한다. 이런 문제는 윤주에게만 있지는 않다.
지수에게는 부모님이라는 문제가 있다. 자취생활을 접고 본가로 들어가게 된 지수는 아빠 눈치를 보게 된다. 아빠는 지수에게 연애를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남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지수가 일하는 가게에 찾아왔던 여자 손님의 표정과 지수의 반응을 보면 그녀는 아마도 지수의 전 애인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이성애자의 삶을 연기하러 갔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는 다르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연애를 하고 있는 지수지만 아빠에게까지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녀는 윤주와 다르다. 이미 자신의 정체성이 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빠에게 말하지 않는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라고 둘러댄다. 지수의 집에 놀러 온 윤주는 '연인'에서 '아는 언니'가 된 자신이 속상하다. 집에서 자신과 거리를 두는 지수가 불안하다. 자식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그래'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지수는 아버지의 소원 같은 부탁으로 소개를 받은 남자와 몇 번의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 사이 윤주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지수가 남자에게 나쁜 일 한 적 있냐고 묻자, 그는 만화책 보려고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친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수가 한 나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지수는 '거짓말'이라고 답한다. 지수가 말한 '거짓말'이 윤주에게 한 거짓말일지, 아버지를 속이고 있는 것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거짓말은 누구나 다 하고 살고 있다'라고 말을 하고 대단하게 나쁜 일도 아니라며 실망이라고 농담을 던진다. 그 말을 들은 지수는 자신을 서울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윤주에게로 간다.
지수의 사정과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혼란스러워하는 윤주에게 훅 다가갔다가 자기 마음대로 멀어지고 다시 훅 다가가는 것은 너무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다. 이해는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차피 '각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지수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윤주가 안타깝다. 다시 돌아온 지수를 어색해하지만 결국은 안아주고 마는 윤주. 담담한 연애담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이야기. 영화 <연애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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