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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교사 - 스포일러 있음


제23회 부일영화상 2017의 후보작으로 선정된 영화 <여교사>. 개봉했을 당시에 평가가 호불호가 극과 극을 달렸다. 레즈비언 물이라는 이야기도 나돌았었는데, 직접 본 바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부일영화상에는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신인 남자 연기상의 3개 부문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혹자는 배우들의 연기가 별로였다고 말했는데, 내가 보기엔 무미건조하고 절제된 김하늘의 연기가 너무나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텅 빈' 공허함의 표현에 깊게 공감했다.


- 10년이야. 내가 가장 예쁘고 잘 나갈 때에...!!

그 말이 슬펐다. 효주. 그녀는 원래부터도 상냥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사는 것에 지쳐 있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달리기를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오던 지나치게 현실주의자였을 사람.

좋게 말하면 낭만을 꿈꾸는 작가고, 나쁘게 말하면 날 백수인 상우와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해 오며 더 닳고 메말라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메마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다른 사람으로 채우기를 원했던 그녀는 상우의 말대로 '자기가 좋아서' 기다려주고 지켜보았지만, '다른 사람(상우)'이 그녀의 갈증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메말라 있었고 더욱 메말라갔다.

'안정감'을 갈구하는 그녀에게 있어 나이 들어가는 자신과 학교에서는 정교사는커녕 계약직 자리도 간당간당한 처지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바닥인 자존감을 숨기며 자존심으로 버텨오던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갑자기 정교사 자리를 박차고 들어온 어리고, 예쁘고, 돈 많고, 정교사이기까지 한 후배 혜영으로 인해 더욱 바닥으로 내팽개쳐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사회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효주의 이야기를 보았다. 오랜 연애를 어이없이 끝냈고,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내가 자신의 가장 예뻤을 20대를 잃고 나이 든 자신을 마주하게 된 효주를 보았다. 내 의사는 묻지 않고 떠나갔던 연인이 내가 원하지 않을 때 내게 돌아 오려 했던 것도 비슷하다. 오로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효주가 필요로 할 때, 그녀의 공허함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때 자신의 생각만 하고 떠났던 상우는 자기가 그녀가 필요해지자 돌아왔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효주의 의견은 없었다. 효주는 자신의 목마름을 채울 다른 대상이 있었기에 상우를 거절할 수 있었다. 나?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멍청하게 행동했는지, 내가 얼마나 나를 아끼지 않았었는지 깨달음을 얻은 상태라서 나를 사랑하느라고 돌아온 연인이 필요치 않았다. 애당초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뭘.

아무튼 19금의 화끈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러닝타임 내내 건조하기 그지없는 효주를 보면 실망감이 말이 아니었으리라.

누군가는 김하늘의 연기가 너무 부족했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녀의 건조하고 절제된 감정 연기가 너무 공감되고 좋았다. "어젯밤, 체육관"의 빌미로 정교사 자리를 요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기보다 다 가진 그녀로부터 하나라도 빼앗고 싶어 했다. 혜영이 가진 것들이 효주에게서 빼앗아 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효주 입장에서는 그녀에게 '모두 빼앗겼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녀가 없더라도 효주는 정교사는커녕 계약 연장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녀 때문에'라는 핑계를 대고 원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년간의 텅 빈 연애로 메마르고 공허한 자신을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잃어버린 젊음, 아름다움, 사랑, 부, 정교사 자리. 그걸 다 가진 혜영이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혜영의 같잖은 약점을 하나 잡았을 때 멀리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재하와의 관계마저도 자신이 주도한 게 아님에도 그녀는 자신이 주도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지며 그 잠깐은 행복했을 것이고 우월감도 들었을 것이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 받기만 하는 거 아니야.

재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가 영악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그저 많이 순수했을 뿐이다. 순수하게 혜영을 많이 좋아했고, 그래서 그녀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재하의 존재는 효주의 초라함을 더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 같았다. 자신이 '아직 매력이 있다'라고 착각에 빠졌을 효주에게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잔인한 도구.


사실 이 영화의 구멍은 혜영이다. 그녀는 효주의 기억에도 없는 학교 후배로 나타나 효주에게 살갑게 군다. 효주가 싸늘하게 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받고 싶어 하는데, 이해가 잘 안 된다. 그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관심병자라고 하기에는 유독 효주에게만 집착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차라리 둘의 관계와 혜영의 태도에 대한 빌미를 좀 더 흘려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밑도 끝도 없이 효주의 애정을 받고 싶어 하던 혜영은 재하의 일로 효주를 응징했다가 효주가 빌며 부탁하자 우월감에 젖은 태도를 보인다. 이미 모든 것에서 효주를 이기고 있는 혜영이지만, 효주가 교사 자리를 빌미로 무릎을 꿇고 빌었을 때 비로소 효주를 이겼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소파에 누워서 '사랑 따위'를 가지고 효주를 도발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캐릭터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 어쩌면 자기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가 자길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효주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분하고 애가 탔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그런 효주를 굴복(?) 시켰으니 즐거워하는 건가?

사실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좀 벅차기는 했다. 효주는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는데 혜영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그게 좀 어려웠다. 혜영의 얼굴을 그렇게 만들고, 재하와 소파에서 관계를 가질 때의 효주는 더없이 공허해 보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학교로 돌아와 샌드위치를 꺼내 씹어먹는 효주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더없이 순수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한다. 마지막 남아있던 그 무언가마저도 툭- 하고 끊어지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공허하고도 공허한 그녀의 눈빛이 기억에 깊게 남는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재미있었고 좋았다. 한번 더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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