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작가의 그림 에세이,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었다. 태생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이제는 빛까지 잃게 될 그림작가가 아직 따뜻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손이 남아 있다며 인사를 전하는 따뜻한 그림 에세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에세이 코너에서 이 책을 만났다. 띠지의 '소리를 잃고 빛을 잃었다'라는 문구보다는 그 따뜻한 색감의 그림에 먼저 손이 갔다.
요즘 나는 <배리어 프리 영화 제작>관련한 교육을 듣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수업을 일주일에 2회 받고 있다. 지난번에 첫 배리어 프리 영화를 시청할 기회가 생겼다. 영화는 총 3단계에 걸쳐서 시청을 했다.
첫 번째는 안대를 끼고 더빙만 된 영화 듣기
두 번째는 안대를 끼고 더빙+화면해설이 된 영화 듣기
세 번째는 안대를 벗고 자막이 있는 영화 보기
끔찍했다. 그리고 너무 놀랐다. 내가 볼 수 있다는 점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더빙과 화면 해설로는 배우들이 표정 하나하나와 작은 움직임까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고 눈치챌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다. 너무 슬펐다. 이렇게까지 갑갑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처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색'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지... 여러 가지로 걱정이 앞섰다.
나는 게임 개발자다. 모바일 게임 개발자고, 모바일 기기라는 특성을 통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는 게임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막막해진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가 있을까. 막막하다.
두 살부터 귀가 들리지 않고, 이제 눈도 보이지 않게 될 구작가가 느낀 막막함과 슬픔을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야기는 시종일관 따뜻하다. 그녀의 처지가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그녀는 평온하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그래서 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나를 힘들게 하던 고민들이 '이 정도는 괜찮은데?'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위로를 해준다. 그림이라는 건 참 좋다.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녹아난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과 고민이 많은 밤이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이 책을 다시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 그 사람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 주면 좋겠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