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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반고흐 라이브展' 다시, 반고흐를 기억하며... 관람 후기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전시, <반고흐 라이브展>에 다녀왔다. 반고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로 지난 5월부터 영화의 전당 비프힐 1층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오는 9월 24일에 전시가 종료된다고 하여 종료되기 전에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반고흐 라이브전의 티켓 가격은 인당 15,000원. 입구에서 티켓 확인을 하고 입장할 수 있다. 다시 반고흐를 기억하며라는 이름에 맞게 그의 작품들과 그의 생에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전시인데, 반고흐의 작품 외에도 반고흐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었던 다른 작가들의 그림도 함께 전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전시의 만족도를 따지자면 만족도는 높지 않은 편이었다. 라이브 전이라는 이름을 위해서 작품을 디지털로 만들어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은 영상으로 전시하는 부분은 색다르다고 생각되지만, 전체적으로 매끈한 종이에 프린트되어 고급스러워 보이는 액자에 담긴 그림은 그림 그 자체에서 영감을 받기는 힘들었다. 차라리 모니터에 그림을 띄우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반고흐 라이브전은 유연석의 목소리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는데, 3천 원을 내면 가이드와 함께 작품 전시를 즐길 수 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순서를 정해서 내키는 만큼 보는 것을 좋아해서 신청하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길게 반고흐의 생애와 미술활동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고, 그 시간대의 배경 사건들과 같이 당시 인상파들의 미술사에 대해서도 적혀 있다. 이렇게 나열되어 있는 것을 쭉 읽다 보면 반고흐의 생애가 그림 한 우물파기도 아니었으며, 그가 마지막까지도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흐의 그림에 대해서는 알아도 고흐의 일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모델들과 여러 추문을 일으키고 다녀서 연애 문제로 귀를 잘랐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흐는 고갱과 같이 있다가 예술적 관점으로 부딪혀 크게 다투고 귀를 잘라낸 거였다. 전시를 보고 나니 고흐의 일생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죽는 날까지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동생인 테오에게 신세를 지고 있던 고흐는 마지막까지 미안해하고 불안해하며 죽음을 택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으나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의 마음이 담겨 있는 그런 전시회였다.


1863년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 홀랑 벗은 여인들과 너무나 태연한 남자들. 같이 간 동행과 그 와중에 풀밭 따가우니까 엉덩이 아래에 옷 깔고 앉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 막 멱을 감고 나온 여인과 같이 저 홀랑 벗은 여인도 멱을 감고 나왔던 것은 아닐까 하고. 그림의 이름은 풀밭에서의 점심인데 점심 식사가 담긴 바구니보다는 벗어던진 옷가지에 더 시선이 간다. 벗은 여인과 그 옆의 남자는 마치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보고 있는 듯, 캔버스 밖의 관람객과 눈이 마주친다.


어딜 가나 한국 관광객이 문제라 하는데, 영화의 전당 전시관도 같은 처지였다. 벽이 손으로 긁으면 쉽게 생채기가 나는 소재이기는 했는데, 하트에 이름까지 그린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수준이...

더불어 요즘 노키즈존에 대한 이야기가 뜨거운데 나와 동행이 관람을 하는 도중에도 아이들은 힐리스를 신고 전시관 안을 누비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술래잡기를 하고 달려 다니고 그 와중에도 부모는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정말 발로 까버릴 뻔했다. 몇 번이고 새겨야 할 팩트는 노키즈존은 아이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개념 없는 부모 때문에 생기지. 뭣도 모르는 어린 아기가 어두운 전시관에서 놀라 우는 것쯤은 어쩔 수 없다. 아기니까. 하지만 부모님의 통제가 가능한 다섯 살 이상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의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하는데도 부모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건 정말이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저럴 거면 그냥 애 데리고 집구석에 처박혀 계셨으면 좋겠다.

지인하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는 애들 때문에 기분이 확 상하더라.


1897년. 카미유 피사로의 <몽마르뜨 거리의 저녁>. 비에 젖은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본 듯한 독특한 화풍이 눈에 띄었다. 몽마르뜨 거리를 가 보지 않았지만,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고 물에 젖은 유리 너머로 본 듯 선명하지는 않지만 거리의 밝고 따뜻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반짝이는 거리와 하늘의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그림.



라이브展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반원의 아치형 스크린에 그림을 띄우고 레이어를 나눠 애니메이션을 넣어 음악과 함께 전시하는 관이 두 군데 있었다.



의자도 있었기 때문에 앉아서 천천히 고흐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애니메이션이 과해서 멀미가 나는 것들도 있었다. 보다가 어지러워서 포기할까 싶을 정도였다. 차라리 커다란 스크린에 그림만 그대로 띄웠어도 충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 보아도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는 느낌의 <별이 빛나는 밤>. 제 발로 정신병원에 걸어들어갔던 고흐가 병원 벽에 그림을 그리는 걸 그만두고 들판으로 나와서 그린 그림.


반고흐 라이브전은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남길 수 있다는 게 참 멋졌다. 스크린관을 뒤로하고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가니 고흐의 방 그림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침대와 빨간색 이불. 파란 문. 벽에 걸린 액자들. 셔츠. 타월. 소박하고 작은방. 어쩌면 병실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치 연극 세트장처럼 입구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실물 세트가 있었다.


세트는 어쩐지 길쭉한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파란 문에 걸린 타월도. 낡은 벽지도. 벽에 걸린 액자와 옷걸이의 셔츠들. 나무 침대와 빨간색 이불까지. 그림 속 고흐의 방과 똑같지만 어쩐지 정면에서 보면 길쭉하다.


파란 문쪽에서 봐도 정방형이 아니라서 어쩐지 어긋난 느낌이 드는 건 마찬가지.


그런데 그림이 걸려 있는 입구 쪽에서 세트를 보니까... 그림과 똑같더라. 그림의 시점과 똑같이 세트를 만들어 둔 거구나. 이런 건 좀 보기에 좋았던 것 같다.


반대편에도 고흐의 방이 있었는데 이 방은 앞의 방과는 조금 달랐다. 침대와 침구, 바닥, 벽면, 가구, 문. 그 모든 것이 흰색으로 되어 있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스크린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빔프로젝터가 쏜 영상이 씌워져 다양한 무늬로 물을 들이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과 똑같이 재연된 세트도 멋졌지만, 똑같은 세트에서 색깔만 빼고 빔 프로젝터로 무늬를 덧씌운 것도 멋졌다. 음악과 함께 수시로 무늬가 변경되었기 때문에 똑같은 세트인데도 한참을 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문과 창문만 파란빛을 띄고 있었는데, 채색이 되어 있는 것 아니었다. 원리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고흐의 자화상. 자신에 대해서 불만스러워서 자화상의 그가 이렇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화상의 그는 언제나 불만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그림에 집중하지 못했고 살아생전에 그림으로 인정받지 못한 그의 생애를 보면 그럴만하다란 생각도 든다.


고갱과 싸우고 귀를 자른 고흐가 그린 자화상. 고갱의 그림 두 개와 자신의 그림 하나를 바꾸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미 잘 나가고 있는 고갱과 마주 싸워야 했을 때 그의 자존감과 예술가의 자존심이 미치지 않고서야 온전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적 영감에 대해서 파고들었던 고흐지만, 그의 일생을 보면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미술사에서 누군가가 크게 성공을 하면 그 화법을 따라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화풍을 고집하지 못했거나, 그게 아니면 정말 재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잘하는 재능은 이렇게도 슬프다.


이 그림의 노인은 페레 탕귀다. 고흐의 그림을 팔아주기도 했던 영감이다. 당시는 일본풍의 그림에 대한 연구와 작품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는데, 아마도 뒤에 있는 그림들은 당시 모델인 탕귀의 뒤에 걸려 있던 그림들이 아닐까 싶다.


카미유가 직접 일본 복식을 입고 그림의 모델이 되기도 했을 정도로 당시엔 일본 그림에 대한 동경이 높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 생각하기엔 썩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일본의 명암 없고 선이 가는 그림을 따라 한 그림들이 앞다투어 나왔고 사실상 일본인의 생김새와 유럽인의 생김새는 완전히 다른데도 생김새마저 따라 그리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시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매끈한 종이에 프린트가 된 작품들이었다. 액자에 잔뜩 힘을 주고는 있지만, 그림은 캔버스도 아닌 미끈한 그림에 인쇄가 되어 있었고, 유화 특유의 굴곡이 가려져서 붓놀림이나 붓 터치 등 그런 부분을 깊게 느낄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차라리 나은데 전시되고 있던 실물 그림은... 질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디지털 모니터로 그림을 띄워 놓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15,000원이라는 관람비가 조금 아까운 수준이었다.


전시된 그림들 사이에 띄엄띄엄 있는 반고흐의 어록.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전시장의 뒤쪽으로 갈수록 그의 말은 더욱 서글퍼진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지... 돈은 꼭 갚을게.
안 되면 내 영혼이라도 줄 게.
그는 그림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자신을 독려하며 계속 그림을 그리게 해 준 동생, 테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테오는 형이 계속 그림을 그리도록 응원하고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하지만 고흐는 죽기 전까지 제대로 이름을 알리지 못했고 경제난에 허덕이는 테오를 보고 고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꿈도 미래도 불확실했던 고흐.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정말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해보았고, 다양한 화풍을 시도했던 그. 불안정한 경제 환경에 같이 흔들리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테오 앞에서 권총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정확하게 사흘 후 사망한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할 수 없다. 정말이지 바닥까지 가난해서 오늘 당장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급급한 사람들에게 꿈은 무엇이고 미래는 무엇인가. 그들에겐 유행처럼 떠도는 욜로도, 휘게도 사치일 뿐이다. 사람이 먹고사는 것에 전전긍긍하는데 어떻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있을까. 긍정이 지나치면 좋지 않지만, 긍정도 기본권이 해결이 되어야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동생에게 고마움과 함께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았던 고흐. 마지막에 테오와 나란히 묻힌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시관의 뒤쪽에서는 예술품의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다.


천장에 크게 걸려있는 고흐의 자화상들.


갤러리에는 유화로 덧칠을 한 리터칭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원본도 아닌 데다가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나와 동행이 보기에도 백만 원을 넘게 주고 살만한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래도 뭐 누군가 사는 사람이 있겠지.


갤러리 앞의 휴식공간. 사실 이 밖으로 나가면 전시장의 끝이기 때문에 굳이 카페도 아닌 이곳에 이렇게 테이블이 놓여 있는 이유를 사실 잘 모르겠다.


출구 쪽에 전시되어 있던 그림. 반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다. 그리고 출구 쪽에는 그 그림과 똑같은 나무 모형을 파란 배경 앞에 전시해 두었다.


내 앞에서 한 가족이 와서 전세를 낸 듯 십여 분 넘게 사진을 찍고 계셔서 무슨 앨범 촬영하는 줄 알았다. 아무튼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다가 아무도 없을 때 찍는데 성공했다. 이건 사진보다는 실물로 보면 더 멋지다.

재연된 그림들이 너무 퀄리티가 떨어지는 느낌이라 아쉬웠지만, 반고흐의 그림과 함께 그의 생애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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