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0년이 지났음에도 받지 못한 사과를 위해, 기억하게 만들려는 영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왔다. 눈물 짜내려고 말든 상업영화라는 혹평도 많은데,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유능한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와 민원왕 '도깨비 할머니' 옥분이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고 가까워져 가며 가족이 되는 영화. 초반부 민재와 옥분은 '남'이다. 가까워질 이유도 없거니와 이유 없는 호의를 보일 필요도 없는 상대다. 츤데레 할머니 옥분은 온 동네 사람들을 부탁하지도 않은 걱정을 해가며 오지랖을 떨어대지만 욕만 들을 뿐이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온전히 기댈 버팀목이 없이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아왔을 옥분 그 나름의 애정표현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귀찮아하기만 한다.
영화 속 옥분이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만큼, 영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내내 그 사실을 숨긴다. 그저 고집스러운 민원왕 할머니와 그 동네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 정심을 대신할 날이 올지도 몰라 '영어 공부'를 하려고 했던 옥분이지만, 초반에는 또 다른 목적인 LA에 사는 남동생과 연락하기만을 보여준다. 이후 엄마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옥분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사지에서 돌아왔음에도 부끄러워하고 쉬쉬하고 아들 앞날을 망칠까 봐 전전긍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인 남동생 역시 그녀를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남동생을 만나고 싶어하고 그리워하지만, 남동생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녀들이 '쌀밥'을 먹고 싶어서 자진해서 위안소로 걸어 들어갔다는 일본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것일 뿐, 우리는. 그리고 그 가족들은 그녀들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부끄러워할 일, 숨겨야 할 일이 아님에도 그런 부모와 가족과 함께 살아오며 '그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만 생각했을 옥분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용기를 내서 기자의 카메라 앞에 섰을 때도 그녀는 아마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엄마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그녀를 보며 너무 불쌍하고 가엽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
그녀를 '남'이라고 생각했던 민재는 그녀가 먼저 자신의 동생 '영재'에게 보내온 호의에 그녀를 다시 보게 되고 그녀와 가까이 지내면서 잊었던 가족의 정을 깨닫게 된다. 철저하게 '남'에서 먼저 건네 온 호의로 호의를 다시 돌려주고 그렇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부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이제 이유 없는 호의를 의심하고, 이유 없이 호의를 건네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민재의 감정 흐름은 나름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시장 재개발 이야기는 민재와 옥분이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감정의 골을 만들고, 시장 사람들이 할머니를 미워하다가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끼워 넣은 면이 있어 보인다. 솔직히 좀 무리했다고 생각한다. 떡밥은 흘려놓고 결국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치매 끼가 있는 옥분의 친구 정심이 그나마 멀쩡히 두 발로 걸어 옥분을 만나러 왔을 때와 정신이 온전치 않아 침대에 누워 있을 때의 시간상 흐름이 명확하지 않아서 조금 당혹스럽기도 하다.
일본에서 증언을 했을 때, 일본인들이 엉터리로 통역을 했었고 그것에 분개해서 이를 악물고 영어공부를 했다는 정심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드는 일본. 옥분 할머니 말대로 그들은 남아 있는 모든 '살아있는 증거'가 사라질 때까지 버티고 기다리려는 지도 모른다. 화가 난다. 그리고 슬프다. 눈물을 짜려고 만든 영화라고 해도 좋다. 눈물을 짜내고 기억해주길 바란다. 아직 살아있는 그녀들의 싸움을 응원해주길 바란다.
박정희 모녀가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과거가 지금까지도 그녀들이 이 세상을 마음 편히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다. 경제를 살렸다고? 그 돈이 어떻게 어디서 온 것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에서 일본 대표가 옥분에게 말한다. 얼마를 원하느냐고. 돈이 아니다. 사과를 바라는 것이다.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그 조차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어렵다.
어떤 미친 국회의원이 자기 딸이 위안부였어도 자기는 용서를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국가가, 국회의원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용서는 사과를 받고 할지 말 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는데 용서를 하라 마라 하는 건 순서가 아니지.
영화는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더 이상 없을 때에도.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분노하게 될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은 정리가 제대로 된 이후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일본과 한국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영화 속 결의안이 통과된 지 10년이 지났다. 과연 언제 인정하고 사과를 할 것인가!
p.s. 영화 <연애담>에서 본 배우 이상희가 족발집 드센 처자로 나왔다. 반갑기도 하고 역시 연기력이 출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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