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미사에서 '전대사'에 대한 찜찜한 마음을 한 켠으로 미뤄두고 한 주를 시작했다. 월요일 오후에 주문한 책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가 도착했다. 내 책은 2011년에 재판한 책이다. 이 책을 쓰신 박도식 신부님은 2003년에 선종하셨다. 블로그 이웃분인 천주교 신자 분이 추천해주셔서 주문한 책이다.
중고서적을 구입했음에도 판매자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책 상태가 매우 깨끗했다. 당장 서점에 가서 꽂혀 있는 새 책을 구입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깨끗함이다.
목차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가톨릭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책이 오자마자 그날 저녁부터 독서를 했다. 이틀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었지만 어느 시점에서 스스로 독서를 그만두었다. 나는 이 책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의 설명에는 비신자와 개신교 신자도 읽어두면 좋은 책이라고, 천주교의 오해를 풀 수 있는 책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비신자였고, 예비신자인 내 눈엔 모순인 것들이 너무 많이 읽혔다. '소설책'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꾹 참고 읽었지만, 제2부를 끝으로 더는 읽을 수가 없었다. 더 읽다간 없던 신앙심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증명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찌 됐든 논리가 부족하다. 보이지 않지만 계시다고 생각하고 그분의 뜻이 함께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논리대로라면 주님은 주님이 아니라 '자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애니미즘+토테미즘+샤머니즘의 총집합이랄까.
영혼의 존재를 이야기하면서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혼'이 없다고 하는 것. '혼'은 없고 혼이 오는 것은 미신이라고 치부하면서, '무당'의 '신'을 '마귀'라면서 또 인정한다는 것. 유일신 신앙이니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다. 현재의 교회는 천주교는 (개신교는 여전히 타종교를 배척한다) 다른 종교인들과 교류를 하라고 되어 있던데, 이 책대로라면 그들의 교류는 '가식' 그 자체가 아닌가! '혼'은 없지만 '영혼'은 있고, '마귀'도 있고,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다. 비신자가 보기에는 '천사'와 '악마'도 무당과 마찬가지로 '미신'인데, 그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지는 않고 '믿어라!!'라고 하는 것이 전부라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물론 이미 신자인 사람들에게 이 책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비신자들에게 이 책을 내어주면 첫 장부터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의자도 연필도 누군가가 만든 이가 있다. 만드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의자를 보고 목수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지구도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분명히 만든 이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열심히 밝혀내고 있지만 아직 지구 탄생의 비밀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절로' 생기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는 송 군에게 '할 말 없으니 가라'라고 말하는 박 신부님은 너무 유치해 보였다. 누가 만들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에 누군가 만든 이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라면, 그게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 그 만든 이가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억지가 아닌가. 불경한 소리일 수 있으나, 만든 이가 '알라'거나 '부처'거나 '우주인'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심지어 박 신부가 예를 드는 과학자들은 전부 개신교 신자다. 지극히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써진 책이라 솔직히 비신자에게는 설득력이 전혀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애당초 신앙의 문제는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설득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정치와 종교 문제는 끝이 나지 않는 토론이라고도 했다. 믿지 않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쓰셨다는 것은 알겠으나 너무 억지스러웠다.
목적. 모든 사물에는 만들어진 목적이 있다. 연필을 만든 이가 연필을 만들 때는 그 쓰임새를 정하고 만들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만드셨고 하느님이 그 쓸모를 정하셨다고 하셨다. 교회에서 신부님께 들은 말씀으로는, 하느님은 천부시고 천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이어져 있고,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식이 된다고 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듯 자식도 부모를 한없이 사랑하고 공경한다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하느님을 공경하든 공경하지 않든 다 똑같지 않느냐는 말에 하느님을 공경함으로써 '대가'가 주어지기 때문에 공경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데 '조건'이 있다니. 기가 막혔다. 신부님 말씀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만들 때 자유의지를 주셨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심지어 '선택'에 의해 주님을 거부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성경에서의 말씀처럼 '죄'는 '선택'한 것이다. 신앙도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행한 것이다. 스스로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스스로가 부모님께 다가가길 바랐기 때문에 공경하고 모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 그 '대가'를 위해 하느님을 공경해야 한다니. 이 무슨 개신교 교회나 할 소리란 말인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있던 신앙심도 깡그리 사라질 것 같다.
30년간 개신교 교회를 다녔던 민군의 지인은, 본인의 장애를 가진 자녀가 교회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지도 못하는데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없느냐고 목사에게 물었더니 그러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다같은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했다. 장애가 있어 스스로 주님을 섬기지는 못하더라도 누굴 미워할 수도 없으니 죄 또한 짓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헌하며 자녀를 위하는 마음으로 주변에 사랑을 실천한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식을 나몰라하지 않으실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교회를 처음 나왔을 때 들었던 말은 이거였다.
내가 스스로를 정진하고 많이 베풀고 좋은 삶을 살면, 아! 종교인은 저렇게 좋은 삶을 사는구나! 하느님을 믿는 삶은 참 좋은 거구나! 하고 그 신앙을 본받게 된다고. 그것이 가장 좋은 전교가 된다고. 나는 그 말을 지금도 마음속 깊이 담고 있다.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고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만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고 다른 이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책을 더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스스로의 논리가 맞지 않는 모순된 글을 읽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교리를 잊지 않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는 게 낫겠다.
하느님은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저자의 말에도 그렇고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 만드셨다.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식이다. 그들에게 신께서 자유의지를 주어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하느님의 자식이다.
크리스천은 하느님을 믿는 삶만이 비참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일정한 기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수십 년간 교회에 다닌 절실한 신자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헌금으로 단 돈 천 원을 낼 여력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기도 한다. 반대로 비신자가 안정적이고 부유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기도 한다. 기댈 곳이 없어 불안정하다고 말을 해 버리면, '기댈 곳이 필요한 심약한 사람들이나 종교를 믿는다'라는 말을 옹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예비신자가 되어 하느님의 자식이 되기를 기다리는 지금도 신앙을 가지면 무조건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스스로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지,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가난한 이와 불우한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았는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양심이 무뎌지지 않도록, 영혼이 죄로 얼룩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더 돌아보고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습으로 시끄러운 명성교회나 종교세 부과로 하느님이 노해서 포항에 지진을 일으켰다는 뇌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목사'라는 이유로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사랑'이 없고 '욕심'이 가득한 이들이 '기도'와 '고해'로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면, 신은 신이 아니라 악마일 것이다.
중고서적을 구입했음에도 판매자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책 상태가 매우 깨끗했다. 당장 서점에 가서 꽂혀 있는 새 책을 구입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깨끗함이다.
목차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가톨릭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책이 오자마자 그날 저녁부터 독서를 했다. 이틀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었지만 어느 시점에서 스스로 독서를 그만두었다. 나는 이 책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의 설명에는 비신자와 개신교 신자도 읽어두면 좋은 책이라고, 천주교의 오해를 풀 수 있는 책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비신자였고, 예비신자인 내 눈엔 모순인 것들이 너무 많이 읽혔다. '소설책'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꾹 참고 읽었지만, 제2부를 끝으로 더는 읽을 수가 없었다. 더 읽다간 없던 신앙심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증명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찌 됐든 논리가 부족하다. 보이지 않지만 계시다고 생각하고 그분의 뜻이 함께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논리대로라면 주님은 주님이 아니라 '자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애니미즘+토테미즘+샤머니즘의 총집합이랄까.
영혼의 존재를 이야기하면서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혼'이 없다고 하는 것. '혼'은 없고 혼이 오는 것은 미신이라고 치부하면서, '무당'의 '신'을 '마귀'라면서 또 인정한다는 것. 유일신 신앙이니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다. 현재의 교회는 천주교는 (개신교는 여전히 타종교를 배척한다) 다른 종교인들과 교류를 하라고 되어 있던데, 이 책대로라면 그들의 교류는 '가식' 그 자체가 아닌가! '혼'은 없지만 '영혼'은 있고, '마귀'도 있고,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다. 비신자가 보기에는 '천사'와 '악마'도 무당과 마찬가지로 '미신'인데, 그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지는 않고 '믿어라!!'라고 하는 것이 전부라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물론 이미 신자인 사람들에게 이 책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비신자들에게 이 책을 내어주면 첫 장부터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의자도 연필도 누군가가 만든 이가 있다. 만드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의자를 보고 목수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지구도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분명히 만든 이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열심히 밝혀내고 있지만 아직 지구 탄생의 비밀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절로' 생기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는 송 군에게 '할 말 없으니 가라'라고 말하는 박 신부님은 너무 유치해 보였다. 누가 만들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것에 누군가 만든 이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라면, 그게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 그 만든 이가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억지가 아닌가. 불경한 소리일 수 있으나, 만든 이가 '알라'거나 '부처'거나 '우주인'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심지어 박 신부가 예를 드는 과학자들은 전부 개신교 신자다. 지극히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써진 책이라 솔직히 비신자에게는 설득력이 전혀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애당초 신앙의 문제는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설득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정치와 종교 문제는 끝이 나지 않는 토론이라고도 했다. 믿지 않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쓰셨다는 것은 알겠으나 너무 억지스러웠다.
목적. 모든 사물에는 만들어진 목적이 있다. 연필을 만든 이가 연필을 만들 때는 그 쓰임새를 정하고 만들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만드셨고 하느님이 그 쓸모를 정하셨다고 하셨다. 교회에서 신부님께 들은 말씀으로는, 하느님은 천부시고 천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이어져 있고,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식이 된다고 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듯 자식도 부모를 한없이 사랑하고 공경한다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하느님을 공경하든 공경하지 않든 다 똑같지 않느냐는 말에 하느님을 공경함으로써 '대가'가 주어지기 때문에 공경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데 '조건'이 있다니. 기가 막혔다. 신부님 말씀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만들 때 자유의지를 주셨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심지어 '선택'에 의해 주님을 거부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성경에서의 말씀처럼 '죄'는 '선택'한 것이다. 신앙도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행한 것이다. 스스로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스스로가 부모님께 다가가길 바랐기 때문에 공경하고 모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 그 '대가'를 위해 하느님을 공경해야 한다니. 이 무슨 개신교 교회나 할 소리란 말인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있던 신앙심도 깡그리 사라질 것 같다.
30년간 개신교 교회를 다녔던 민군의 지인은, 본인의 장애를 가진 자녀가 교회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지도 못하는데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없느냐고 목사에게 물었더니 그러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다같은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했다. 장애가 있어 스스로 주님을 섬기지는 못하더라도 누굴 미워할 수도 없으니 죄 또한 짓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헌하며 자녀를 위하는 마음으로 주변에 사랑을 실천한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식을 나몰라하지 않으실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교회를 처음 나왔을 때 들었던 말은 이거였다.
내가 스스로를 정진하고 많이 베풀고 좋은 삶을 살면, 아! 종교인은 저렇게 좋은 삶을 사는구나! 하느님을 믿는 삶은 참 좋은 거구나! 하고 그 신앙을 본받게 된다고. 그것이 가장 좋은 전교가 된다고. 나는 그 말을 지금도 마음속 깊이 담고 있다.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고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만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고 다른 이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책을 더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스스로의 논리가 맞지 않는 모순된 글을 읽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교리를 잊지 않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는 게 낫겠다.
![]() |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송 군'의 입을 빌려서 말하고 있다 |
하느님은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저자의 말에도 그렇고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 만드셨다.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식이다. 그들에게 신께서 자유의지를 주어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하느님의 자식이다.
정말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은 비참하고
언제나 불안하고 안정성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생활이란
일정한 기반과 안정이 없는 것 같다.
크리스천은 하느님을 믿는 삶만이 비참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일정한 기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수십 년간 교회에 다닌 절실한 신자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헌금으로 단 돈 천 원을 낼 여력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기도 한다. 반대로 비신자가 안정적이고 부유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기도 한다. 기댈 곳이 없어 불안정하다고 말을 해 버리면, '기댈 곳이 필요한 심약한 사람들이나 종교를 믿는다'라는 말을 옹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예비신자가 되어 하느님의 자식이 되기를 기다리는 지금도 신앙을 가지면 무조건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스스로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지,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가난한 이와 불우한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았는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양심이 무뎌지지 않도록, 영혼이 죄로 얼룩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더 돌아보고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습으로 시끄러운 명성교회나 종교세 부과로 하느님이 노해서 포항에 지진을 일으켰다는 뇌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목사'라는 이유로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사랑'이 없고 '욕심'이 가득한 이들이 '기도'와 '고해'로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면, 신은 신이 아니라 악마일 것이다.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