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꾼>을 보고 왔다. 사실 예고편만 보았을 때는 B급 싸구려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악당을 잡기 위해서 악당들을 모은다는 설정은 사실 매우 흔하다. '분노의 질주'에서조차 써먹던 설정이 아니던가.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도 나쁜 놈 잡으려고 나쁜 놈을 모았었다. 사실 나쁜 놈들로 모인 드림 팀이라는 인물 구성은 특별할 것도 없는 설계이긴 하다. '사기꾼'만 모아 놓았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고 '최고의 사기꾼-정치질 하는 놈'을 잡기 위한 그물을 펼쳤다는 것에서 대국민 공감을 일으키며 흥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빈 얼굴만으로는 힘들었다고 봄.
그냥 사기꾼들 모여서 사기판 벌이는 그런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고, 아마 관객의 생각이 그쪽으로 치중되도록 감독이 노린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되짚어보면 이게 그렇게 깜짝 놀랄만한 일은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박성웅 배우가 맡은 곽승건이라는 캐릭터가 춘자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엔딩을 보고 나니 그럴 수 있겠다고 빠른 납득을 했다. 사실 이 영화가 좀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시작부터 끝까지 가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짜잔! 반전입니다!'라고 하는 부분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회의하는 곳에 CCTV는 어떻게 설치를 했는가. 국내에 있는 황지성이 해외에 있는 것처럼 조작을 했을 때는 김과장은 아직 조력자가 되기 전이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장두칠을 잡기 위해서 모인 '꾼'들은 어떻게 황지성을 신뢰하고 그 오랜 시간 작전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이강석은 황지성의 편에 들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가 장두칠의 오른팔에게 연락을 했을 때 장두칠과 연락이 되어 이 '판'에 박 검사가 낚여들었는데, 통화 당시 황지성은 박 검사와 같이 있었다. 그런데 이강석의 통화 내용은 미리 녹음했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웠고 말이다. 이 미스터리는 어떻게 풀 것인가. 이렇게 작은 디테일들이 빠지고 '짜잔- 반전이다!'하는 식이라서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뭔가 모를 찜찜함을 남기게 된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평범한 소시민들이기에 정치인이나 기득권 상대로 힘없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설정은 언제나 '감동'과 '공감'과 함께 흥행을 불러오는 편이다. 하지만 이 '승리'는 생각 외로 당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바보 같아서 억지스러운 느낌이 드는 승리다. 남을 이용하며 그 자리까지 갔다면 그들은 더 치열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아야 할 텐데, 이 영화에서의 기득권들은 헛똑똑이(박 검사)와 멍청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통쾌함은 분명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
사기꾼을 믿지 말라는 고석동의 말에 사기꾼 안 믿는다는 박희수는 결국 그 사기꾼들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초반에만 해도 박 검사가 국회의원들 똥 치우는 거 진저리가 나서 장두칠을 잡아 국회의원들 다 빅엿 먹이는 전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한자리에 모여있는 박 검사와 사기꾼들. 그리고 장두칠의 최측근이라는 곽승건. 사실 이 포스터 자체가 스포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화장실 옆에 붙어 있는 이 포스터를 보니 영화의 반전이 납득이 갔달까...
사실 곽승건보다는 고석동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기에, 그 부분에서 많이 감탄했다. 곽승건의 캐릭터가 춘자와의 만남에서 허점이 보이는 캐릭터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석동'의 캐릭터는 일관되었었기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정말 짐작도 못했다. 난 그가 팀을 배신한 '척'한 게 아닐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긴 했어도 설마 '팀'이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이 부분은 정말 재밌었다.
싸구려 B급 영화를 생각할 수 있는 설정과 예고편이지만 본편은 예고편 이상으로 재미있기 때문에 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이 포스팅을 보고서 영화를 보러 가는 거라면 내가 본 것만큼 재미있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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